언제부터인가 추사에 대한 글과 유적을 찾게 되었다. 세한도를 보고 느낀 감동때문이다.
세한도는 논어 제9편 자한편 '세한연후 지송지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공자 말씀에 날이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알겠다"에서 나온것이다.
이상적은 김정희의 대정 유배지에 <만학집(晩學集)>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책을 부쳐 주고, 다음해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120권을 보내 주었는데 그먼 북경에서 백권이 넘는 책을 보내온 것이다. 그래서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 보내주었다. 이 세한도를 북경으로 가지고 가서 북경의 명사들16명의 글을 받았다.
세한도는 이상적 사후 이상적의 제자였던 김병선이 건사했고 김병선의 아들 김준학이 제목과 시를 적었다. 일제시대에 이르러서 경성제국대학 교수이자 완당연구가였던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의 손에 들어갔다. 후지츠카는 완당의 서화나 그에 대한 자료를 매우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심각해지자 일본으로 돌아갔다. 서예가 손재형(孫在馨, 1902~1981)이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여 세한도를 양도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손재형이 세한도를 양도받고 난 석달 뒤인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으로 후지츠카의 서재가 모조리 불타버리면서 그가 수집한 완당의 수많은 작품들도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운명적으로 살아남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손재형은 49년 세한도를 오세창 정인보 이시영에게 보이고 감상문을 또다시 적었다. 손재형은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돈이 모자라 세한도를 저당잡혔는데 세한도는 다시 손세기 손창근부자에게 넘어갔고 이번에 손창근씨가 국가에 기증한것이다.
세한도 우선보게나 완당.
세한도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그 감동을 이루 표현할수 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 계속볼수가 없어 다시가서 보기를 3번, 보고 또본다.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설명한 글이다. 원래 이상적에게 준 그대로이다. 이것을 그먼 북경까지 가서 감상문을 받아왔다. 현대판 댓글이라고 해야 하나?
불이선란도이다. 세한도와 함께 걸작으로 꼽히는 추사의 난초 그림이다.
김홍도의 평양감사 연회도이다.
세한도 특별전이 2021년 1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한 평안'이란 이름으로 진행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간김에 3층 전시실을 들렀다. 도자기관은 새로운 전시를 위해 휴관이고 표류수금문 정병에 한동안 서있었다. 언제봐도 잊혀지지 않는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앞이다. 언제보아도 잊을수 없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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