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8

중국의 통일전선 1

중국 1905년 손문이 공화국을 세운다는 목표 아래 중국혁명동맹회를 결성하고 무장봉기를 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동맹회 하부조직을 중심으로 1911년 우창봉기가 일어나 성공하고, 1개월내 14개성에서 봉기가 일어나 독립을 하게 되었다. 혁명파들은 통일된 정부의 필요성을 느껴 중화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청나라는 진압할 능력이 없어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전권을 위임하면서 청조 봉건군주제는 막을 내리게 된다. 중화민국이 탄생(신해혁명)하고 임시 정부의 대총통으로는 손문이 취임하게 된다. 군대가 없던 손문은 원세개와 공화제를 추진하는 조건으로 원세개와 손을 잡고 총통을 제안하였다. 총통이 된 원새개는 북경을 수도로 종신황제가 되면서 합작은 깨졌다. 원새개가 죽고 북양군벌의 각파들이 베이징정부를 장악하였고 전국..

역사이야기 2022.06.15

베트남 혁명

베트남 베트남등 인도차이나 3국은 19세기이래로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2차세계대전기간 일본이 점령했다. 호치민등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과도 손을 잡고 통일전선을 결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후일 베트남 통일을 달성하는 베트남독립동맹(越南獨立同盟), 즉 베트민(일명 월맹)의 시작이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베트민의 호찌민은 다음날인 8월 16일 전국 국민회의를 주최해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8월 25일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9월 2일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1차 민족해방전쟁 프랑스 제4공화국은 베트민이 수립한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정식으로 인정해주는 듯 하였으나, 곧바로 입장을 바꿔 베트민 주도의 베트남 독립국가 건설을 인정하지 않았고, 종전 후..

역사이야기 2022.05.03

이란혁명

이란혁명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제국주의 영국과 독일은 석유자원이 있는 이란을 지배하려는 침략적 야망밑에 치열한 쟁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페르시아(이란) 카자르 왕조의 군인이던 레자 칸(레자 샤 팔라비)이 혼란한 정세를 이용하여 192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1925년 왕위에 오르면서 팔라비 왕조가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레자 샤는 이란의 중립을 선언했지만, 연합군의 통과를 거부하는 한편 국내 독일인을 추방하는 것도 거절하며 히틀러정권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1940년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과 독일의 교전이 시작되고 이란과 국경을 접한 이라크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반영친독으로 선회하자 영국은 페르시아만에 면한 송유시설과 중동지역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또한 이란이 소련으..

역사이야기 2022.04.10

EC121 정찰기 격추사건

미군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납포해 1년동안 협상을 통해 사람만 돌려보낸 다음해 북한이 이번엔 하늘에서 정찰기를 격추했다. 1969년 4월15일 31명의 미군을 태운 최신예 EC121을 동해상에서 격추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군은 정기적으로 연해주에서 소련 극동함대의 동태를 파악하고 동해안을 타고 내려오며 북한내부를 정찰활동을 하고 있었다. 최신예 정찰기 EC121워닝스타는 높은 고도에서 정찰활동을 하고 있었고 소련이나 북한에서 전투기가 발진하면 바로 공해상으로 달아나 버렸다. 북은 이 정찰기를 요격할 결심을 했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동해안 어랑공군기지가 있었지만 활주로가 600미터밖에 되지 않아 구형 미그 15기밖에 없었고 미그15기는 정찰기가 다니는 고도까지 오르지도 못했다. 미그21기는 요..

역사이야기 2022.03.26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니카라과 혁명)

니카라구아는 농업이 주산업이고 커피와 면화 수출이 경제의 대부분이였다. 1926년 부통령 후안 바우시스타 사카사의 대통령 승계를 지지하는 산디노는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1927년 미 해병이 개입하자 수백 명의 부하와 함께 니카라과 북부의 산속으로 피신했으며, 그뒤 미군과 니카라과 국민방위대와 싸우며 남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널리 동조세력을 얻었다. 1933년 1월 미 해병대가 철수하고 사카사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평화회담을 위해 국민방위대장 아나스타시오 소모사와 만나자는 제의를 받고 나갔다가 납치되어 살해되었다. 소모사는 1936년 국가 방위군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었던 사카사를 몰아내고, 1937년 1월 1일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40여년 소모사가문의 독재가 계속되었다. 19..

역사이야기 2022.03.14

세계최초 선거로 사회주의 정권을 만든 나라 칠레(아옌데의 실패)

칠레의 경제 현실 칠레 경제에서 구리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높은데 대부분의 구리 광산들은 다국적 기업(미국이 80%를 차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1970년 당시 칠레의 1인당 국민소득은 954달러로 이미 중진국 수준의 국가였다. 1960년 기준으로는 일본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고, 1970년 기준으로도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비슷한 수준의 국민소득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겉으로는 중진국이었지만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워지지 않아 부의 대다수를 소수의 부유층이 점유하고 있고, 농토의 대부분도 독점하고 있었으며 중산층의 비율도 그리 많지 않았으며 인구의 대다수는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게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으며 빈곤층으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 칠레의 정치 현실 1933년 칠레의 사회주의 정당인 칠레..

역사이야기 2022.02.22

꿈에 그리던 세한도를 보다

언제부터인가 추사에 대한 글과 유적을 찾게 되었다. 세한도를 보고 느낀 감동때문이다. 세한도는 논어 제9편 자한편 '세한연후 지송지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공자 말씀에 날이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알겠다"에서 나온것이다. 이상적은 김정희의 대정 유배지에 두 책을 부쳐 주고, 다음해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120권을 보내 주었는데 그먼 북경에서 백권이 넘는 책을 보내온 것이다. 그래서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 보내주었다. 이 세한도를 북경으로 가지고 가서 북경의 명사들16명의 글을 받았다. 세한도는 이상적 사후 이상적의 제자였던 김병선이 건사했고 김병선의 아들 김준학이 제목과 시를 적었다. 일제시대에 이르러서 경성제국대학 교수이자 완당연구가였던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의..

역사이야기 2020.11.29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조선왕조실록이 판본별로 크기가 다르다. 1945년 광복 이후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었으나, 이후 태백산본은 1980년대 부산광역시에 있는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적상산본도 구황궁 장서각에 그대로 소장되었으나, 1950년 6·25 전쟁 당시 북한측에서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해간 오대산본은 1923년의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대부분 타서 없어졌다. 일본에 남아있던 오대산본 47책은 2006년에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반환되었다. 풍악내산총람도를 이렇게 크게 만들어 놨다. 추사의 글씨체 나는 아무리 봐도 20대의 글씨가 제일 잘쓴것 같다. 나는 하수다. 금동반가사유상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새롭게 국보 ..

역사이야기 2020.07.28